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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문학 책] 마이클 샌델 -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by dailymemo 2025. 9. 11.

마이클 샌델 -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최근 TV 드라마 중 <아이쇼핑>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아이를 선별한다는 내용으로, 나에게 큰 충격을 줬다. 공부 못하는 불량품 아이를 폐기처분하려는 사이코패스 엄마의 연기는 소름 끼치도록 섬뜩했다.

 

철학서를 읽으면 어렵고 추상적인 단어들 때문에 머리가 팽팽 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내용은 흥미로웠다.

저자는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하버드대학 정치학과 교수다. 그는 2006년 대통령생명윤리위원회의 전문가 위원으로  위촉되어, 배아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윤리적 쟁점을 다루었다. 저자는 당시 줄기세포 복제 연구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으나, 전체 투표 결과 10대 7로 반대표가 더 많았다. 결국 당시 부시 대통령은 위원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배아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지원 법안을 거부했다. 이 책에는 그런 고찰 과정과 저자의 결론을 담았다.

저자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배아 줄기세포연구는 찬성하지만, 유전자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유전자 조작은 반대한다.

배아 복제는 찬성하지만, 인간 복제는 반대한다.

배아가 사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인간과 동일하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논거와 그에 대한 반론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 사회에서 생명윤리에 대한 담론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윤리는 사람들 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같을 수 없다. 대신 합의를 통해 대다수가 동의하는 의견이 윤리적 잣대가 된다.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따라 윤리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장애가 있어 생존 가능성이 낮은 새끼는 어미로부터 버림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어미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안아키' 카페의 회원처럼 아이가 수두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큰 비난을 받는다. 심지어 안아키 카페 운영자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부모가 아이의 질병을 방임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윤리는 사람이 실행 가능한 행동의 범위를 정한다. 이는 앞서 말한 대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해진다. 행동에는 스펙트럼이 존재하여, 양 극단을 제외한 나머지 행동을 윤리적으로 허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이 중요한 이유이다. 하지만 이를 나누는 윤리적 기준은 칼로 무 자르듯 윤리적 선악을 나눌 순 없다. 그러기에 더욱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이런 합의를 발판 삼아 정책과 법이 수립된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수용하기 어려운지 알면 윤리적 기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과학의 발전 속도가 도덕의 성숙보다 빠른 현대사회에서 윤리적 담론이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 질문을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감정적인 결론을 배제하고 순전히 이익과 손실의 개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후천적으로 유전자 조작기술을 쓰는 건 윤리적인가?

운동선수가 유전자 기술을 이용해 근육을 키우거나, 기억력을 강화하거나, 키가 커지는 것이 허용될까?

그렇다면 육상선수에게는 어느 범위까지 가능할까? 선수용 러닝화, 각종 보충제, 고도 조절 훈련, 합성 EPO 투약, 스테로이드 투약, 유전자 강화.

성악가가 마이크를 쓰는 것도 도핑인가?

교육을 통해 아이의 지능을 높이는 것과 유전적인 조작으로 지능을 높이는 것에 도덕적인 차이가 있을까?

인공수정 후 성별을 선택하여 착상시키는 것은 윤리적인가?

치명적인 병을 유전자 조작 기술로 치료하는 것은 허용될까?

 

다음 명제들도 행동의 스펙트럼 안에 존재한다. 양극단을 정하고 그 사이를 정도에 따라 순서대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각각의 수용 여부를 확인하면 각자가 생각하는 윤리적 기준점을 찾을 수 있다. 이 기준점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조사해 보면 어느 지점에서 사회적으로 합의할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청각장애 레즈비언 커플이 청각장애 아이를 갖기 위해 청각장애인의 정자를 기증받는다.

키 크고 늘씬하고 똑똑한 사람의 유전자, 즉 우수한 난자를 거래한다.

정들었던 애완동물을 복제한다.

불임 치료를 위해 IVF 한다.

불임 치료 후 남은 배아를 이용해 줄기세포연구를 한다.

연구를 위한 배아 줄기세포연구를 한다.

질병 치료를 위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한다.

강화를 위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한다.

 

인간의 유전자 조작에 대한 찬반 논리는 이렇다.

찬성 : 유전자 조작은 더 발전하려는 인간 본성의 결과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교육하는 것이나 키 크기 위해 호르몬제를 투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반대 : 위르겐 하버마스는 자율과 평등의 자유주의 원칙들을 내세웠다.

디자인된 아이는 열린 미래를 맞이할 자율권을 침해당한다. (→ 반론 : 누구도 자신의 유전학적 유산을 고르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유전공학을 이용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불평등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유전자 조작을 허용하면, 자녀를 유전학적인 최선으로 고쳐주어야 할 부모의 새로운 책임이 생길 수 있다.


인간복제 찬성론은 어쩌면 우생학을 연상하게 한다.

예전에 미국에서 정신질환자, 수감자, 극빈자에게 강제 불임을 규정하는 법을 채택했다. 싱가포르에서는 고학력 여성의 출산을 지원하고, 저학력 여성의 불임술을 지원했다.

최근의 우생학은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자유주의 우생학이라 부른다. 

 

아이의 탄생은 부모에게 확정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열린 마음을 선사한다. 통제하려는 마음을 억제시키고 겸손함을 가르친다. 하지만 유전적인 조작으로 아이의 성질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함을 낳는다.

유전적 조작의 결과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부모는 자녀를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