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여, 순전히 제목에만 이끌려 이 책을 집었다. 앞으로 나는 무얼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이 많은 시기라서 제목이 더 와닿았다. 우연히 발견한 책 치고는 새로 알게 된 내용과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좋았던 책이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마음을 떠올리고,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의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의사들에게 자아성찰과 반성을 요구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치는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연상시킨다.
"침묵하는 다수의 선량한 의사들이여 깨어나라."
1부 생태계
나는 평소 의사집단에 대한 자조감과 의문이 있었다. 의료계 내 다른 직종과도 사이가 안 좋고, 같은 의사끼리도 진료과와 역할에 따라 갈등과 반목이 많다. 그래서 의료계에 문제가 생기면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정치력이 형편없다. 작년 의정사태 때에도 근로자인 전공의, 의대생과 사용자인 개원의사, 병원은 입장이 달랐다.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적나라한 의료계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의대생, 인턴, 전공의를 거치면서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의 민낯을 보았지만, 저자는 대학교수와 제약회사 이사로 지내며 알게 된 더 은밀한 진실을 알려준다.
의료계에는 크게 보면 5명의 플레이어가 있다. 환자, 의사, 병원, 정부, 기업(제약회사)이 복잡한 역학구조를 만든다. 나는 작년 의정사태를 통해 의사와 병원이 다른 집단이라는 것까진 깨달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세력은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위의 그림에서 '진료'를 제외하면 모두 '돈'의 흐름이다. 자본주의에서 나머지를 뒤에서 조종하는 것은 결국 거대자본, 즉 제약회사다.
의사는 최종적으로 환자에게 진료를 제공하는 말단 요소로, 의료 생태계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의료비 상승, 의료서비스에 대한 환자들의 불만은 가장 힘이 없는 의사에게 쏠린다. 근로자 또는 영세업자일 뿐인 의사는 억울해하지만 아무도 동정해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의사 본인도 자신들의 뒤에서 어떤 세력이 움직이는지 모른다. 의사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각 플레이어마다 각자의 입장과 요구사항이 다르다.
의사 : 정부가 정한 의료수가가 낮아서 박리다매를 해야 한다. 문진과 신체 진찰에 대한 수가는 없어서 소홀해지고, 진단검사와 영상검사에 의존한다. 원가보존이 안 되는 진료비를 보상하기 위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검사나 치료를 권한다.
의과대학의 묻지마 교육은 묻지마 수련, 묻지마 진료까지 이어진다. 의대에 입학할 때의 초심은 잃고 맹목적이고 소극적으로 살게 된다.
병원 : 규모의 경쟁에 매몰되어 몸집만 크게 부풀린다. 의료라는 '사명'이 아닌, '경영'을 한다. 전공의, 펠로우라는 고학력 저임금 계약직 직원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과목을 세분화, 전문화한다.
제약회사 : 제품에 대한 비즈니스 분석을 마친 후, KOL(key opinion leader)들을 활용하여 제품을 판촉 한다. 바쁜 의사들을 대신해서 학술모임을 주선하고 의제를 준비하고 통계자료, 보도자료, 프레젠테이션까지 만들어준다. 필요하다면 질병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진단기준을 낮추고 임상시험을 해서 치료지침을 바꾼다. 의사는 이 모든 것에 숟가락을 얹을 뿐이다.
정부 : 수가를 결정하는 강력한 주체다. 건강보험료는 올리고 병원 수가 지급률은 줄일수록 좋다.
수익성이 안 좋아서 민간에서는 기피하는 일에도 공적자금을 써야 할 책임이 있다.
환자 : 꼭 필요한 처치만 싼 값에 받고 싶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닥터쇼핑을 한다.
2부 변화
저자는 의사들에게 다음을 주장한다.
1. 의사는 검사기계에 의존하지 말고 문진과 신체진찰에 힘써야 한다. 환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이고 사명감을 되찾아야 한다.
2. AI도입, 원격의료 등 미래의료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의대에 들어가면 장미꽃잎이 뿌려져 있는 탄탄대로일 줄 알았다. 그래서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타성에 젖어 살아왔다. 도전 정신과 창의성은 잃어버리고, 의대에서 배운 것이라고는 '남들만큼만 하자'는 마음가짐이다. 인턴, 전공의를 하면서도 도제식 교육 속에서 맹신과 맹종을 배웠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아무리 똑똑해도 의대에 들어가면 바보가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될 순 없다.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 이젠 내 삶을 개척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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