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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심리학 책] 데이비드 버스 - 욕망의 진화

by dailymemo 2025. 8. 20.

데이비드 버스 - 욕망의 진화

이 책은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 교수가 인간의 짝짓기 전략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분석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옮긴이는 그의 제자이자 경희대 교수인 전중환 교수로, 교수님의 글을 교수님이 번역하다 보니 교양도서라기보다는 한 권의 학술지를 읽는 느낌이었다. 어느 외계인 연구원이 인간의 짝짓기를 관찰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면 이 책과 같을 것이다. 글의 흐름이 매우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며, 자칫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소재이지만 가치판단을 담지 않은 무미건조한 문체이다. 남녀의 성 전략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어서 유익했다. 반면 너무 학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고 책의 분량이 600쪽에 육박하기 때문에 완독 하는 데에 많은 집중력을 요했다.

 

욕망의 진화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욕망에서 나온다. 그중 번식의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는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가장 근본적인 구조적 차이는 남자는 자신의 정자를 여자의 몸에 주입함과 동시에 번식의 목적이 달성되는 반면, 여자는 자식을 9개월 동안 뱃속에 품고 그 이후에도 양육해야 된다는 점이다. 남녀 간의 모든 갈등과 화합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자는 번식 성공력을 높이기 위해 자원을 아끼면서 되도록 많은 여자와 짝짓기 하려는 동기가 있다. 반면 여자는 자신과 아이가 보호받고 안정적으로 자원을 공급받으려는 욕망이 있다. 남자의 짝짓기 욕구와 여자의 보호 욕구는 서로 상반된 욕구이지만, 마치 시장에서 가격을 흥정하듯 타협을 거쳐 양측이 수용가능한 지점에서 거래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면서 자신의 욕구를 만족하도록 공진화(co-evolution)하였다. 남자는 여자의 배우자 선호에 맞추기 위해 헌신적인 남편이 되도록 진화했고, 여자는 이에 화답하여 정절을 지키는 아내가 되도록 진화했다. 이것이 오늘날의 일부일처제이다.

 

남자와 여자의 배우자 선호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우선 남자는 번식력이 좋은 여자를 선호한다. 번식력을 알려주는 단서는 바로 나이외모이다. 즉 남자는 젊고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를 좋아한다. (너무 당연한 소리이다.) 여자의 젊음은 번식력을 대표하는 단서다. 윤기 나는 머리, 깨끗하고 탱탱한 피부, 대칭성 등은 병원균이 없고 건강 상태가 좋다는 것을 알려준다. 높은 엉덩이-허리 비율과 큰 젖가슴은 출산과 양육에 유리하다. 남자의 이런 배우자 선호에 맞도록 여자는 젊어 보이려고 화장이나 시술을 하고, 몸매를 가꾸는 노력을 한다.

반면 여자는 자원(음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자신을 보호해 주는 헌신적인 남자를 선호한다. 이런 특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파악하기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남자의 자원 공급력을 알려주는 단서로는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나이, 지능, 체격과 힘, 건강, 야망과 근면성 등이 있다. 또한 남자의 자원을 오직 자신만이 독점하려 하기 때문에 신뢰성, 안정성, 성향 적합성, 사랑과 헌신을 요구한다. 남자는 여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게 이런 특성들을 발달시키도록 선택압(selective pressure)을 받았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기대를 놓고 보았을 때, 왜 남자는 단순하고 여자는 복잡하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다.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던 남녀 간의 욕구 차이를 자세히 알고 나니, 요즘 우리나라에서 부쩍 심해진 남녀갈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자본주의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많은 남자는 충분한 자원을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그럴수록 여자는 자원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고, 자원이 부족하다면 높은 수준의 헌신이라도 요구한다. 더 많은 기대를 짊어졌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절망한 남자는 짝짓기 대상이 되어주지 않는 여자에게 불만을 품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종종 폭력성을 보인다. 이에 여자는 더 높은 수준의 보호를 요구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반복하면서 남녀갈등이 극으로 치달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편으로 남녀의 욕망 차이 속에서 나의 배우자 가치를 높이기 위한 성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더 가치 있는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여자의 배우자 선호의 요소를 갖추면 된다. 즉,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추는 나이에 진입하고, 지능과 힘을 키우고, 건강을 유지하며, 신뢰감, 안정성, 사랑과 헌신을 주어야 한다. 역시 좋은 남자가 되기란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배우자 선호를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속임수를 쓴다. 남녀가 서로의 배우자 선호에 맞아 보이게 상대에게 속임수를 쓰는 것을 가리켜 저자는 '진화적 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예를 들어, 남자는 헌신적이여 보이기 위해 여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척' 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면 여자는 이 속임수를 피하기 위해 시간을 오래 가지며 남자를 주의 깊게 살피도록 진화했다.

 

일시적인 짝짓기와 장기적인 짝짓기에 따라 전략이 다른 점도 흥미로웠다. 경험적으로나, 진화론적 설명으로나 남자는 여자보다 일시적인 짝짓기에 더 관대하다. 이때 남자는 여자 보는 기준을 낮춘다. 매춘은 거의 모든 경우 남자가 여자에게 요구한다. 여자의 경우도 일시적인 짝짓기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거나 배우자 교체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남자는 성적 부정을, 여자는 정서적 부정을 더 나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에게는 아내가 낳은 자식이 자신의 친자식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부성 불확실성이라는 적응적 문제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자의 정절을 중요시하며 여자의 성적 부정을 참지 못한다. 여자에게는 남자가 혼외정사를 하면 자원이 다른 곳으로 새어버릴 수 있다는 적응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남편의 성적 부정보다는 정서적 부정을 더 경계한다. 질투의 방식은 다르지만 남녀 모두 서로의 배우자를 지키려는 동기는 확실하다.

 

남녀는 오르가슴에 대한 동기도 다르다. 남자는 여자의 몸에 자신의 정자를 주입하는 순간을 즐긴다. 여자는 남자의 정서적 합일에 더 집중한다. 하지만 아직도 여자의 오르가슴의 존재 여부와 목적에는 학자마다 의견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이슈인 '남사친, 여사친 논란'도 진화론적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남사친, 여사친 관계는 '남자는 일시적인 짝짓기 후보군을 확보하고, 여자는 남자가 장기적인 짝짓기 상대로 괜찮은지 가늠해 보는 사이'로 정리할 수 있겠다. 남사친, 여사친 관계는 없다는 내 지론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남녀는 근본적으로 번식 앞에서 상반된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본성을 공유하며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며 공진화했다. 유전자가 하나도 안 섞인 남녀가 만나 평생을 같이 살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다름을 이해하고 화합을 이뤄나가는 데에 이 책이 도움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