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1511년
생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 그리스 북부 스타기라라는 촌동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실력 있는 궁정의 의사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10살이 되던 무렵 부모님이 모두 병으로 세상을 떠나 친척 손에서 자랐다.
17살이 되던 해, 철학을 배우기 위해 아테네로 유학을 간다. 아테네의 이름난 웅변 학교를 돌아다닌 끝에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똑똑해서 플라톤의 애재자가 되었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메이아의 정신'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그를 아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20년 간 아카데메이아에서 공부했지만 결국 스승인 플라톤과 다른 길을 걷게된다. 아카데메이아의 차기 원장으로 기대되었지만 스승과 제자의 사상이 극명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수학과 기하학에 기본을 둔 완벽하고 정교한 세계를 이상적인 세상으로 꿈꾸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현재 삶에서 진리를 찾으려 했다. 플라톤이 관념론적 이상주의자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론적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기원전 343년 장차 대왕의 칭호를 얻는 마케도니아의 황태자 알렉산드로스 3의 스승이 된다. 3년간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친 뒤 그는 아테네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곤 양떼를 보호하는 신인 리케이오스를 모시는 신천 근처에 '리케이온'이라는 학당을 열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정원과 숲속을 산책하면서 철학을 논하며 수업했는데, 이를 두고 '소요학파'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학당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지원을 바탕으로 생물학, 천체학, 물리학 등 과학에 대한 탐구에 열중했다. 인간의 감정은 심장에 있고 두뇌는 피를 식히는 기관에 불과하다는 다소 괴짜(?)적인 결론을 내기도 했지만 사실과 원인을 밝히고 그것이 지닌 의미를 밝히려는 철학적인 자세를 가졌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고 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친마케도니아 세력으로 몰려 도망자 신세가 되고 얼마 가지 못해 위장병으로 사망한다. 생전에 물리학, 생물학, 철학, 수사학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저서를 썼지만 현대까지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한동안 잊혀지다가 중세에 들어서 기독교 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그의 사상이 재해석되면서 빛을 보게 된다.
중용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과 중용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 삶의 목적은 행복이라고 말했다. 여기서의 행복이란 쾌락적이고 무절제한 것이 아니다. 무절제한 쾌락은 고통을 가져다줄 뿐이다. 행복은 쾌락과 도덕 사이의 균형, 즉 중용에서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덕'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기 위한 핵심 원리를 설명한다. 중용의 덕은 ‘과도함’과 ‘부족함’을 피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용에 이르기 위해서 이성적인 판단만으로는 부족하고, 꾸준한 노력과 의지로 구체적인 실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미덕이 중간 지점에 있다고 주장했다. 용기는 무모와 비겁, 절제는 낭비와 인색, 긍지는 교만과 비굴의 중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각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행동이나 감정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으며, 이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조용한 것이 덕이 아닐 수 있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덕이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덕은 그 사람의 성격과 상황에 맞는 중용을 찾는 것이다.
중용의 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상황과 성격에 맞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원리이다. 이는 결국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기 자신과 타인, 환경과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를 강조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적 접근법이다.
자연관
그는 세상이 단순히 기계적인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지 않았다. 대신 세상도 인간의 삶처럼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연관되어 있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은 후대에서 신학의 기초가 된다.
그는 귀납적 관찰로부터 자연에 대한 공리를 얻고 그 공리로부터 사실을 연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앎을 총 4단계로 나누었다. 첫 단계는 신체의 각 기관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이다. 이어서 감각이 머리 속에 남은 '기억', 지적 능력으로 기억을 종합하여 다른 대상에 확대 적용하는 '경험', 마지막으로 경험을 통해 자연의 공리를 얻는 '지혜'가 있다. 세상에 대한 관찰을 통해 지식이 생성되는 것을 강조했고 이는 현대과학의 귀납적 연구론과 맞닿아 있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존재와 그 본질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탐구로,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실체(substance)"라는 근본적인 개념을 통해 설명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실체"란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나무라는 존재는 나무라는 '실체'를 가진 것이고, 나무의 색이나 크기는 그 나무의 속성에 해당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실체가 모든 존재의 근본적인 바탕이자,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변하지 않는 본질이라고 봤다.
중산 정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철학은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잘 드러나있다. 그는 통치자의 수에 따라 정치 체제를 군주정(일인정), 귀족정(소수정), 제헌정(다수정)으로 나누었다. 이들이 타락한 정치 체제가 각각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이다. 그리고 군주정, 귀족정, 제헌정, 민주정, 과두정, 참주정 순으로 좋다고 봤다. 즉 군주정이 가장 효율이 좋지만 타락할 경우 최악이 될 수 있는 반면, 제헌정은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없지만 타락할 경우에도 그 해악이 덜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한 삶의 전제를 중용이라고 보았고 중산층이 극단적인 참주정이나 민주정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어느 정도 재산과 상식을 가진 사람들, 즉 중산층이 나라를 다스리는 '중산 정치'를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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