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는 중세 스콜라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기독교 신학과 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그리스도교 교리를 조화시켰으며, 이를 체계화시켜 저서 '신학대전'을 집필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기독교 철학의 양대 산맥으로 여겨진다.
생애
토마스 아퀴나스는 1225년 이탈리아 아퀴노 근교 로카세카 성에서 태어났다. 토마스 아퀴나스라는 이름은 아퀴노의 토마스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영지를 지키던 무장이었으며, 토마스는 아버지를 닮아 체격이 크고 한번 마음먹으면 절대로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는 승부사 기질을 지녔다. 어린 시절 수도원에서 초등교육을 받았고 도서관에 파묻혀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15세가 되던 해, 나폴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다. 이때 만물박사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만나 당시 유럽에서 한창 유행을 이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접한다. 당시 유럽은 기독교 신앙이 지배하고 있었다. '알기 위해 믿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앙은 논리적인 사고보다 우선시되었다. 신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지는 일은 죄악시되었다.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찼으니 진정한 세상인 하늘나라의 정신적인 가치만이 중요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경험을 정신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탐구를 통해 신과 세계를 알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었다. 당시 유럽 분위기 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이단시 되었으나 알베르투스는 그의 사상을 그 어떤 것보다 기독교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이성과 신앙은 대립하지 않으며 상호 보완적이라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알베르투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고 논리적인 작업으로 기독교 사상을 정립하는 데 힘쓴다. 가족들은 토마스가 군인이나 정치가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토마스는 신앙과 지식을 추구하기 위해 도미니코 수도원에 입회한다.
이후 그를 눈여겨본 알베르투스의 추천으로 어린 나이에 파리 대학 신학과 교수로 임명된다. 그는 치밀하고 논리적인 문제 제기와 해결 방식으로 단숨에 파리 대학 최고의 인기 교수가 되고 동료 교수들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다른 교수들과의 토론에서도 단순하고 쉬운 용어로 막힘 없이 상대를 설득했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도미니코 수도회가 반대파들에게 사상적으로 공격을 당하자 구원 투수로 등장해 논쟁을 벌이며 자신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펼쳐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를 드리다가 신을 깨닫는 신비로운 경험을 한 후 '내가 보고 내게 계시된 내용에 비하면 내가 그동안 쓴 것은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절필을 해버린다. 토마스가 죽은 이후 그의 업적을 기려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맹목적인 신앙이 아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신의 뜻을 깨닫는 것이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 성인이었다.
사상
인간, 국가, 교회의 역할
토마스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따라서 국가는 인간에게 자연스럽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얻기 위한 기준을 마련해 준다. 인간에게 최고의 행복이란 신을 직관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복은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신이 세상에 심어 놓은 자연법을 깨닫고, 이에 따라 선을 좇고 악을 피하는 생활을 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자연법에 따라 사람들을 다스리고 행복으로 이끌 때 사회의 공동선을 이룰 수 있다.
교회는 국가가 이루려는 공동선보다 더 소중한, 신에게로 나아가는 초자연적 목적을 추구한다. 따라서 종교적 구원이나 신에 관한 문제에서는 국가는 교회에 복종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교회의 아래인 건 아니다. 국가는 자연법에 따라 사회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가치가 있다. 국가와 교회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향해 가는 서로 다른 두 길일뿐이다.
이성과 신앙
토마스는 이성과 신앙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중요한 사상을 제시했다. 그는 이성과 신앙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성은 자연 세계와 인간 존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지만, 신앙은 신의 계시와 초자연적 진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퀴나스는 이성과 신앙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고 봤으며, 두 가지가 서로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앙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에서 진리를 밝혀준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신의 존재나 삼위일체와 같은 신학적 진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다고 보았으며, 이는 오직 신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성은 신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신의 창조물인 자연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신의 존재 증명
토마스는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 했고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로 '운동의 원인'을 통한 증명이다. 모든 운동에는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무한히 연속된 운동의 원인들이 존재할 수 없으므로, 최초의 운동을 일으킨 원인인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통한 증명이다. 모든 현상은 원인에 의해 일어난다. 이 원인들 중에는 첫 번째 원인이 필요하고, 이를 '신'이라 명명한다.
셋째로 '필연성과 가능성'을 통한 증명이다.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가능성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존재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므로, 그 존재를 '신'이라고 정의한다.
넷째로 '최고의 선'을 통한 증명이다. 존재하는 것 중에는 더 나은 것과 더 낮은 것이 있다. 그러므로 최고의 선이 있어야 하며, 이를 신으로 해석한다.
다섯째로 '목적론적 증명'이다. 자연계의 질서와 법칙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목적을 부여하는 존재가 바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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