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토머스 홉스는 1588년 영국 윌셔주 마르크스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질 낮은 사제로, 홉스가 태어난 직후 교회에서 쫓겨나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홀로 자라난 홉스는 삼촌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부유한 삼촌 덕분에 유명한 사립학교에 다녔고, 이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논리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며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홉스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데번셔 백작 가문에 비서로 취직하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백작의 아들을 가르치며 교육자로서도 활동하였다. 1610년대 초, 홉스는 백작의 아들과 함께 5년간 유럽을 여행하면서 당시 유럽이 겪고 있던 종교 전쟁의 혼란을 목격하게 된다. 기독교 간의 종파 싸움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종교가 인간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실감하며 충격을 받았다. 이 경험은 그가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 종교적 윤리가 인간 사회에서 실현될 수 없는 허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종교의 가르침에서 말하는 성인군자와 같은 이상적 삶이 현실에서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이는 후에 그의 정치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40세에 데번셔 백작 2세가 요절하고, 홉스는 잠시 뉴캐슬 백작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이때 그는 자연과학 서적을 읽으며, 관찰과 실험을 통한 과학적 탐구방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는 특히 수학적 사고에 매료되었으며, 수학처럼 확실하고 엄밀한 체계로 윤리와 도덕을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리를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은 홉스가 도덕과 윤리를 단순한 관념적 문제로 보지 않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체계 속에서 규명하려는 기초가 되었다. 그는 윤리학이 과학적 방법을 통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명확한 원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이 청교도 혁명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에 홉스는 프랑스로 망명하게 된다. 그는 프랑스에서 체류하는 동안 영국의 정치적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어갔다. 1649년, 왕 찰스 1세가 처형당하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것을 보며 홉스는 당시 사회의 혼란을 진정시킬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는 당시의 정치적 갈등과 불안을 해결할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그 결과 그의 대표작인 '리바이어던'을 집필하게 된다. 이 책은 정치철학에서 인간 본성과 사회 계약, 국가의 권위와 절대주의를 논의한 중요한 작품으로, 홉스가 제시한 정치 이론의 핵심이 담겨 있다.
홉스는 1679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사상은 이후 정치철학과 사회이론의 중요한 기초로 자리 잡았으며, 여전히 많은 철학적 논의에서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특히 그의 '자연 상태'와 '사회 계약' 이론은 현대 정치 이론에서도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홉스의 사상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적 혼란과 불안에서 출발하여, 국가와 권력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철학적 논의의 주제로 남아 있다.
사상
리바이어던,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론
홉스는 인간 사회가 형성되기 전을 자연 상태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들이 각자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태에 놓인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 지속되며, 인간들은 지속적인 위협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자연 상태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이런한 자기보존욕을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자연권'이라 부른다. 홉스는 이 상태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믿을 수 없고, 자신을 지킬 힘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안전하게 살기 위해 서로 해치지 않겠다는 '사회 계약'을 맺는다. 이는 곧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자연적으로 맺어진 '자연법'이다. 또한 홉스는 그 계약을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국가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리바이어던은 성서에 나오는 괴물로, 그 누구도 맞설 수 없는 무시무시한 괴수로 표현된다. 홉스는 국가가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리바이어던이 되어야 하고, 모든 권리를 국가에 양도한 구성원들이 국가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홉스는 국가의 권위가 약해지면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국가가 강력한 권력을 행사해야만 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고, 이 과정에서 주권자의 권력은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권위가 약해지거나 사람들이 그 권위에 반항하면, 다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홉스는 이를 통해 국가의 권력이 사회 질서와 안전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했다. 그는 국가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침해받을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에게 있어 사회의 안정과 질서는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시 되어야 했다.
홉스의 국제 정치에 대한 시각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그는 국가 간의 관계를 냉혹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홉스에 따르면, 국제 사회는 마치 정글처럼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각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쟁하고, 이는 종종 전쟁과 충돌로 이어진다. 그는 국제 정치에서 도덕적 기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자기 보존을 추구하는 본능에 의해 지배되므로, 국가 간의 관계도 이러한 본능을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보존"이라는 욕구가 인간과 국가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홉스의 정치이론은 근대 정치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회 계약론은 후에 많은 정치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근대 국가 이론의 중요한 기초를 형성했다. 특히 그의 절대주의적 시각은 후에 루소, 로크, 몽테스키외 등과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비판받기도 했다. 존 로크는 홉스의 자연 상태론을 비판하며, 인간이 본래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입장에서 자연권을 옹호했다. 그러나 홉스는 그와는 달리, 인간의 이성보다는 본능과 욕구가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다고 보았다. 그의 인간 본성에 대한 비관적 시각과 강력한 국가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 역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리바이어던'은 근대 정치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현대 정치이론과 윤리학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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