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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요약]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사상

by dailymemo 2025. 6. 12.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생애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철강 재벌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났다. 그는 탁월한 지적 능력과 함께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인물로, 일찍이 그의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빈의 전통적인 명문학교가 아닌 기술학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공학에 남다른 자질을 보였다. 1906년 란츠 실업학교를 졸업한 후, 베를린 공대에 입학하여 기계공학을 연구했으며, 1908년에는 영국 맨체스터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공학과 수학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그는 철학에 대한 깊은 열망을 품고 있었다. 이 시기, 그는 러셀의 수학의 원리와 프레게의 사상을 접하면서 수학과 철학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1912년, 철학적 자질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프레게를 만나러 갔고, 프레게는 그에게 러셀에게 배울 것을 권했다. 이에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해 버트런드 러셀과의 만남을 통해 철학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을 스승으로 삼으며 철학적 탐구를 시작했고, 그의 사상은 러셀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그 당시에도 전형적인 천재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기질은 괴팍하고 예민했다.

1913년,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고민에 몰두하고 싶어 노르웨이로 떠나 오두막을 짓고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이듬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에 자원하여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전쟁 중에도 그는 철학적 탐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그 결과 『논리철학 논고』라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가 탄생하게 된다. 이 책에서 그는 언어와 세계 사이의 관계를 논하며, 철학이 다루어온 문제들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철학계를 떠났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외딴 시골의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게 되지만, 교사들과의 마찰과 학생들에 대한 과도한 기대, 그리고 체벌 문제로 결국 1926년 교직에서 물러났다.

1929년, 40세의 나이에 다시 철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로 돌아갔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노르웨이의 오두막에서 사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1939년에는 정교수가 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병원에서 잡역부와 실험실 조수로 자원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후에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지만, 신경쇠약으로 인해 1947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아일랜드 시골에서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결국 1951년, 비트겐슈타인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사상

 

『논리철학 논고』 - 언어와 의미의 구조

『논리철학 논고』는 그의 철학적 사상을 집대성한 중요한 저작으로, 이 책에서 그는 언어의 구조와 그 의미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펼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기능을 ‘그림 이론’에 의해 설명한다. 그림 이론은 언어가 세계를 ‘그림처럼’ 나타낸다고 보는 관점이다. 즉, 언어는 특정한 상황이나 사건을 재현하며, 그 명제들이 세계의 가능한 상황들과 일대일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이곳에 망치가 있다"는 명제는 실제 세계에서 망치가 존재하는 상황을 그대로 그림처럼 재현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세계의 구조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하며, 그로 인해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에 대해 매우 중요한 결론을 내린다. 그는 신, 자아, 도덕과 같은 주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한다. 이들 개념은 세계에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언어로 다루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철학이 해야 할 일은 언어의 의미가 실재하는 세계의 상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라며,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즉, 언어는 과학처럼 실세계의 사실들을 설명하는 데만 유효하며, 그 이상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적 논의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철학적 탐구』 - 언어의 규칙과 삶의 양식

비트겐슈타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출간된 『철학적 탐구』는 그의 철학적 사상의 전환을 담고 있는 저작이다. 이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전의 『논리철학 논고』에서 제시한 그림 이론을 비판하며, 언어와 의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언어가 특정한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양식 속에서 규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망치"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망치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사용되는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떤 상황에서는 "망치 좀 갖다줘"라는 명령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상황에서는 "저기 망치가 있다"는 사실을 전달할 수도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가 그 사용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았으며, 이는 단순히 언어와 대상 간의 일대일 대응을 넘어서는 접근이다. 언어는 고유한 규칙에 따라 사용되며, 이 규칙은 철학적 논의에서 우리가 자주 겪는 오류를 줄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언어의 의미를 명확히 정의하려는 시도보다는, 실제로 언어가 사용되는 다양한 상황을 관찰하고 그 규칙을 드러내는 것이 철학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언어와 의미, 그리고 철학적 탐구의 방법론에 대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는 철학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언어가 어떻게 세계를 재현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했다. 그의 사상은 후에 분석철학과 언어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철학자들이 그의 작업을 바탕으로 언어와 의미의 문제를 새롭게 탐구했다. 특히, 철학적 탐구에서 제시된 언어의 삶의 양식에 대한 관점은 현대 철학에서 중요한 참고점이 되었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계속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생애와 사상은 전통적인 철학적 문제들을 재조명하며, 철학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제공하였다. 그는 인간 존재와 언어의 복잡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철학이 현실 세계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사상은 철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점에서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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